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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킨_옥타비아 버틀러

by 상팔자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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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옥타비아 버틀러

옮긴이 이수현

발행처 김영사

값 15,000원

 

 

 

일가친척

 

 

이 소설은 100여 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76년을 살고 있는 주인공 에다나(줄여서 다나로 함)는 어느 날 갑자기 1800년대의 낯선 곳으로 순간이동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는 주인공의 충격적인 고백과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 다나는 남편 케빈과 함께 막 이사를 마치고 짐을 푸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현기증이 찾아왔고 남편도 집도 모두 사라진 숲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눈앞의 강 한가운데에서는 어린아이 하나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것이 루퍼스와 다나의 첫 만남이었다.

 

"당신이 얼마 동안 없어졌는지 알아?"
"몇 분 정도. 길지 않았지."
"몇 초였어. 당신이 사라졌다가 나타나서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껏해야 십 초에서 십오 초밖에 흐르지 않았어."_p.21

 

 

다나는 실제로 겪은일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현재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렀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일은 루퍼스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루퍼스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자신의 먼 조상이라는 사실 또한...

 

 

공교롭게도 1800년도의 그 시절은 흑인 노예제도가 남아있던 때였고 다나는 흑인 여성이었다. 그곳에 머물게 되는 시간은 며칠이 되기도 하고 몇 달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잠시라도 그곳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다나는 노예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모두와 맞서지 마. 사람들에게 싫다고 말하지 마. 화난 모습을 보이지도 마. 그냥 '네. 그러겠습니다' 한 다음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나중에 채찍질을 당할 수도 있지만, 정말 원한다면 채찍질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_180~181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나는 점점 어떤 것이 진짜 자신의 삶인지 혼돈스럽기 시작한다. 

 

 

어쨌든 그 집을 보고 느꼈던 안도감을, 집에 왔다고 생각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멈춰 서서 생각을 바로잡아 내가 낯설고 위험한 장소에 있음을 상기해야 했던 순간을, 그런 곳을 집이라고 생각해버렸다는 사실에 놀랐던 순간을 떠울릴 수 있었다._p.369

 

 

과거의 시간과 장소에 아주 메어 있지도 않지만 아주 자유로울 수만도 없는 상황 속에서 경험자이자 관찰자이기도 한 다나는 자신이 과거의 일에 너무 깊게 빠져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안타까운 상황을 그저 두고 볼 수만도 없다. 비록 흑인노예 여성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기도 하는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들을 도우려 한다. 

 

흑인 노예라는 주제가 전면에 등장하는 만큼 소설이 너무 무겁거나 어둡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단숨에 읽을 수 있을 만큼 긴장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길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재미가 있으면서도 인간의 경험이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SF 장르이면서도 이처럼 현실적인 소설이 또 있을까. 우리는 과거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인류는 평생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악한 자는 어쩌면 약한 자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사는 법을 다정하게 구는 법을 알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결국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다. 버리는 법을 알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도 없다. 

 

 

"살면서 이렇게 외로웠던 적이 없어."
다른 말은 나를 움직이지 못했겠지만 그 말은 내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외로움에 대해 알았다. 나도 모르게 케빈 없이 집으로 돌아갔던 때를 돌이켰다. 그때 느꼈던 외로움, 두려움, 때로는 무력감, 그러나 루퍼스에게는 무력감이 가끔 느끼는 감정이 아닐 터였다._p.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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