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꿈
지은이 정보라
펴낸곳 파란미디어
값 14,500원
저주토끼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작가의 이름만 보고 집어 들었다. 저주토끼는 단편이어서 장편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야기는 빙의와 악몽, 인간과 죽은 자들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어 취향이 아니라면 조금 불편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사건의 당사자인 남자가 아닌 그의 여자친구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의 시선에서 시작하고 끝이난다.
나, 살해당했어.
어떻게 된 일인지 네가 좀 알아봐 줘야겠다. _p.21
동창의 장례식에 간 태경은 죽은 남자의 혼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 태경에게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죽은 남자는 찾아왔다. 죽은 남자 문석은 태경이 남들과 달리 죽은 자를 알아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를 만난 후 태경은 문석이 죽기 전 인듯한 상황을 계속해서 꿈속에서 마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태경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통에 죽은 남자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죽은 남자의 추악한 악행뿐이었다.
한편, 태경에게는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여자친구 성연이 있다. 생과 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한 그녀는 태경과의 폭력적인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으려 한다. 태경은 왜 죽은 남자가 자신을 선택했는지 의문을 가지다 문득 자신 또한 그와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문석 또한 자신처럼 여자를 가두고 폭행을 일삼았다.
나는 내 생존의 형태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신체의 접촉과, 궁극적으로는 그런 접촉을 통한 에너지의 전달이다._p.50
태경과 성연은 죽은 자들을 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서로 가까워진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성연에게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하고 성연 또한 그를 도우려 하지만 원한 맺힌 혼에 태경은 사로잡혀 버린다. 오히려 성연에게까지 해를 끼치는 위험을 자초하기까지 한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죽은 자를 보는 이의 경험과 그로 인한 공포를 주로 전개가 되지만 그 이면에는 약자에 대한 폭력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태경과 성연은 연인 사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생존을 위한 공생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태경의 폭력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성연이 이를 받아들임은 생명의 연장에 있다. 비록 폭력은 성연 또한 원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태경은 성연의 간절한 부탁이자 단호한 충고를 끝끝내 무시하고 사태를 악화시킨다. 아마도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 그 사건의 해결이 콩알만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결말이 좀 찝찝함이 남기는 하지만 인과응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게 또 어쩌면 이 소설다운 결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을 소모품 취급하는 사회에서 태경의 쓸모는 성연을 통해 거듭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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