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옮긴이 성귀수
펴낸곳 문학세계사
값 7,800원
비행기 이륙시간이 지연되면서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오고 한 남자가 격식을 갖추며 말을 걸어온다. 느닷없이 말을 걸어온 그는 상대가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재차 피력함에도 불구하고 귀찮게 군다.
난 말이죠, 인생의 낙이 바로 공인된 공해를 유발하는 거랍니다. 희생자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없는 만큼 재미나지요.
말을 걸어온 이는 텍스토르 텍셀. 텍스트를 짠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이름의 남자는 자신의 어렸을 적 자신이 친구한테 가졌던 악의에서 시작해 자신의 범죄를 하나하나 고백하며 죄의식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애초에 그의 접근은 계획적이었으며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모든 일의 책임을 주인공에게 떠맡기며 선택을 종용한다.
죄의식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갈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선험적으로 문명지어진 것이죠. 역시 네덜란드인의 발명품인 일종의 장세니즘이라고나 할까요.
장세니즘 : 17세기초, 네덜란드의 신학자 코르넬리우스 얀센(Jansen)에 의해 주창되고 훗날 프랑스 포르-루아얄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된 종교 이론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부하고 신의 예정설을 채택했으며, 구원의 열쇠는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신의 은총이라고 가르쳤다. 구원의 열쇠는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신의 은총이라고 가르쳤다. 여기선 철저한 숙명론에 바탕을 둔 엄격주의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대화체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점점 달라지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의 큰 틀은 죄의식에 있다. 또한,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조차도 모르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우리는 가끔 발견할 때가 있다. 소설은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장법이란 보편적 질서의 학문이자 이 세상을 결정하는 지고의 도덕률이라오. (중략) 만약 내가 당신한테 덥석 달려들어 모든 걸 까발렸다면 그건 화장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애당초 당신이 타깃이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신성한 현기증 속에서 실감해야만 했으니까요.
텍스토르가 여기서 말하는 화장법이란 엄격한 형식주의를 말한다. 주인공에게 원하는 바를 인지 시키기 위해서 단계를 밟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며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죄의식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데 있다고 본다. 물론 그 방식이 꽤나 과격하기도 하고 이 또한 개인적으론 매우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엄중한 잣대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단계를 거쳐 단두대에 올리는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공항 대기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반전의 재미가 있다. 다만, 이야기 중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철학적 사상이나 비유는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책에서 옮긴이의 주석이 달려 있어 이해를 돕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소설로서의 재미는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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