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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여름의 빌라_백수린

by 상팔자 2024. 6. 12.

여름의 빌라

지은이 백수린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3.500원

 

 

 

 

8편의 단편이 엮여 있다.

여름이 한창인 지금 휴가지에서 읽기에 좋을 것 같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연히 스치는 인연들, 그 인연들과의 기억이 담긴 책이다.

매우 별 것 아니고 사소할 수 있지만 아주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런 일이나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되돌아보게 되는 현재의 나의 모습 같은 것들이 잔잔하게 마음을 흔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나게 재밌지는 않은데 읽어볼 만하냐고 하면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을 부술 듯 두드릴 때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_p.17

 

시간의 궤적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시간일까 그 속에 갇힌 사람일까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면서도 변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를 부정하면

과거의 지나온 나마저 부정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뭉개고 살다 보면 쌓인 시간들이 보상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추억으로 남은 멈춰진 시간일지 모른다

비가 오는 소리, 그날의 냄새, 함께 했던 사람의 얼굴 같은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걸 알아챌 때는 항상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후다

 

 

긴 여행 끝의 피로가 눈꺼풀 위로 내려앉았지만,
아마도 그때 나는 처음 홀로 긴 여행을 떠나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충만감, 달콤한 자유로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_p44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_p.56

 

여름의 빌라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라는 건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적의 없는 호의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나보다 못한 타인의 처지를

나와 비교하며 때론 안심하거나 더 나은 사람을 시기하기도 한다

떠난다는 것은 묻어두는 것이다

현실을 복잡한 일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단지 외면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알면서도 떠나는 것은 잠시나마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시 마주할 마음을 다질 시간이 말이다

 

 

반 아이들은 언뜻 평화롭게 공존하는 듯 보였지만,
물리적 성질이 달라 합류 지점을 지난 뒤에도 각자의 흰빛과 검은빛을 유지하며
나란히 흐른다는 남아메리카의 두 강줄기처럼, 서로 섞이는 법이 없었다._p.82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_p.104

 

고요한 사건

아버지가 재개발 지역을 염두에 두고 이른바 '소금고개'라고 불리는 동네로 이사하며

전학을 가게 된 나는 교실 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부류의 아이들을 감지한다그리고 유독 고양이가 많던 그 동네에서 나는 처음 죽은 고양이를 보게 된다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떼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_p.135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붉은 지붕의 집에서 사는 삶을 공상하는 것으로 자신의 체념들을 모른 척하고 살았던 그녀

다정한 엄마의 모습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붉은 지붕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 안의 무엇 또한 허물어짐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여자'라는 일면 무해해 보이는 표현 속에
감춰져 있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나는 거슬렸던 것 같다._p.175~176

 

흑설탕 캔디

남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진짜 원했던 삶, 원하는 것을 잊고 살다가

우연한 순간 맞이한 짧은 생동의 시간, 그 시간을 추억하게 하는 흑설탕 캔디는

손에 꼭 움켜쥐고 놓치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유일한 욕망이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_p.265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호기심 많던 시절, 엄격했던 엄마에게서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다미

그리고 아카시아 숲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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