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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성녀와 마녀_박경리

by 상팔자 202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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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마녀
지은이 박경리
펴낸곳 도서출판 인디북
값 9,500원


인간 내면의 본성



얼핏 제목만 보고는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것을 기대했었다. 개인적으로 연애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긴 한데 워낙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한번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토지'는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
실제로는 본 적이 없지만 옛날 자료화면에서 봤던 과거 흑백 영화의 통속적인 연애 스토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소설이지만 단순히 사랑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를 사는 여성 또는 인간으로서의 삶의 본성에 대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수영과 형숙은 서로 사랑하지만 수영의 아버지와 형숙의 어머니의 과거로 인해 헤어진다. 그 이유라는 것이 형숙의 어머니가 요부였으며 형숙 또한 그 피를 이어받았으니 같은 요부일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게다가 그 요부가 사내를 망쳐버리는 습벽을 가지고 있어 아들의 인생이 망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요부라는 단어 자체부터가 우습기 짝이 없다. 오히려 매력적이고 인기가 많은 여성이라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이 어울리며 놀았던 스스로는 배제한 채 여자에게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비겁하고 옹졸하다. 좋아 쫓아다닌 것도 스스로이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도 불륜을 서슴지 않은 공범인 주제에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수영을 사랑하면서도 그를 피해 자신만의 길을 가는 형숙의 모습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다. 그녀는 수영을 아주 놓아주지도 아주 붙잡지도 못한 채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삶을 향해 간다.

"저는 탕녀와, 피가 나쁜 저의 어머니란 어머니란 여자를 생각해봤어요. 그 여자는 아마도 사랑을 몰랐다기보다 감정의 노예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평생 발버둥 친 여자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사내들은 그 여자를 소유하려, 그 여자를 정신적인 노예로 만들려고 했을 거예요. 사랑했겠죠. 그렇지만 경멸했을 거예요. 결코 존경하지는 않았을 거예요._p.79~80


한편 하란은 수영이 형숙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 수영을 짝사랑한다. 그리고 수영의 동생 수미의 약혼자인 하세준은 하란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수영은 형숙이 자신의 친구인 박현태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는 홧김에 하란과 결혼을 하기로 한다. 수영은 결혼하고도 형숙을 잊지 못하고 가정에 소흘해지고 하란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애틋한 세준의 사랑에 점점 끌리게 된다.

사람 마음 가는 데야 누가 어쩔 수 있을까마는 참 얄궂기도 얄궂게 관계가 얽혀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와 다름없이 수영은 비겁자이며 하란의 인생을 망쳐놓은 파렴치한이기까지 하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녀와 결혼을 하는 바람에 그녀에게 열린 다른 행복의 가능성조차 막아버리고 만 것이다.

외곬으로 쏟아져 나오던 허세준의 무서운 정열에 하란은 마음의 문을 열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그 거칠고 우악스러웠던 사랑의 표현은, 수영에게로만 흘러가던 하란의 물줄기를 결국 끊어놓고야 말았는지도 모른다._p.260


형숙은 여러 남자를 만나며 그야말로 탕녀처럼 살아가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수영을 위해 희생한다. 반면 하란은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살지만 외간 남자에게 마음을 주고야 만다. 어느 쪽이 성녀이고 마녀인지를 구분 짓기보다는 인간 누구에게나 양극의 모습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랑이란 불가항력의 힘을 지니고 있어 사람을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는 감정임을 보여준다. 비록 소설에서는 불행의 극단에 치달은 듯 보이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미완성으로 인해 오히려 화석처럼 가슴에 아로새기는 완성을 이루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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