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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밤의 여행자들_윤고은

by 상팔자 2021.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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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지은이 윤고은

펴낸곳 (주)민음사

값 13,000원

 

 

밤의여행자들 표지
씽크홀 같은 여행

 

요나는 재난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사 정글에서 일하던 어느 날 사직서를 제출한다. 진심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진짜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자 상사는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한 달의 휴가를 제시한다. 표면상으로는 출장처리를 할 테니 검토 중인 여행상품 중 하나를 골라 여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것. 요나가 선택한 상품은 가장 비싼 5박 6일 코스의 사막의 싱크홀 프로그램이었다. 여행에서 요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날 끊어진 열차칸에 혼자 남겨진 탓에 본의 아니게 여행지에 며칠 더 머무르게 된다. 사막의 씽크홀 재난을 안고 있는 '무이'에서는 숨겨져 있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된다. 재난보다 무서운 진실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죽은 자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재난이라는 소재로 이렇게까지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무이'는 실제 존재할 것만 같은 공간으로 연출되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겨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또한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소설이다. 뉴스 속의 사건들이 과연 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것과 타인의 재난 상황을 보고 안타까운 한편 안전한 내 상황에 안심하는 인간의 양가적 감정 같은 것. 재난 상황을 여행으로 소비한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이미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정말 그런 상품을 대놓고 전시하는 여행사는 없겠지만 우리는 남의 불행을 가끔 가십거리처럼 즐길 때가 있다. 정말 안타깝고 슬픈 상황이라면 그렇게 가볍게 떠들어 대지는 못할 것이다. 타인의 불행을 통해서만 내 삶의 행복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요나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난을 '구경'하러 갔다가 스스로가 재난의 당사자가 된 셈이다. 재난 여행 프로그램의 기획자에서 재난 자체의 기획자가 되고 결국엔 그 재난에 매몰된다. 남의 불행을 대하는 인간의 오만한 태도가 초래한 비극이 아닐까 싶다. 세계 곳곳에서 재난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희생자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관련 없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재난은 없어도 삶 자체가 고난이다. 남의 고통에 보통은 무관심하게 사는 경우가 더 많다. 굳이 남의 고통을 끌어다 써야만 내 삶에 대한 확신이 서는 것일까. 우리는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를 찾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나를 채우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 간 나를 전시하기 위한 여행 공간의 특이점에만 매몰되어 추억이 아닌 기록으로만 남는 여행. 밤의 여행자들에서의 밤이 낭만이 아닌 어둠으로 느껴지는 것은 재난을 내 만족을 위한 전시의 영역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의 여행은 우월함의 증거일 뿐이다. 재난이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더 이상 구경거리로만 남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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