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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_김훈

by 상팔자 202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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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훈

펴낸곳 (주)도서출판 푸른숲

값 13,000

 

달려, 보리야

 

나, 수놈 진돗개 보리. 태어나보니 개가 되었는데, 보리밥을 좋아해서 보리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개는 배워야 할게 많거든.

 

개의 공부 chapter1

몸뚱이로 모든 것을 느껴라.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바람이야. 이걸 느끼려면 콧구멍과 귓구멍을 활짝 열어야 해.

 

신바람! 이것이 개의 기본정신이지. 신바람이 살아 있으면 공부는 다 저절로 되는 것이고,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야.

 

개의 공부 chapter2

 

눈치가 빠르고 정확해야 해.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야. 부드러운 마음이 힘센 마음이거든.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무엇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괴롭히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

 

가끔 보면 사람들은 개보다 더 약한 것 같아. 개는 가까운 냄새 먼 냄새도 구분해 맡을 줄도 알고 수염이 있어서 바람의 방향도 알 수 있고 움직이는 물체의 기척도 알 수 있거든.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 살아가지를 못해.

 

내가 태어난 고향은 댐에 물이 차올라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새 주인이 있는 바닷가 마을로 가게 됐어. 주인님의 배가 선착장에 닿으면 밧줄을 물어서 쇠말뚝에 거는 일은 했는데 주인님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개로 태어난 게 너무 행복했어.

 

나는 비로소 이 세상의 수많은 개들의 한 마리가 아니라 주인님의 개가 될 수 있었다.

 

가끔 내가 심하게 짖을 때가 있는데 까닭 없이 짖는 건 아니거든? 주인님이 뭐라고 하셔도 짖고 말고는 내가 정해. 싸울 때도 짖지 않아 싸울댄 입이 바빠서 짖어댈 틈이 없거든. 개의 싸움은 외롭고 슬퍼서 으렁 으렁 하고 슬픔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날 뿐이야.

 

주인님은 파도에 휩쓸려 죽었어. 근데 죽는다는 게 뭔데 땅 속에 있는 거지? 나는 인정할 수 없어서 무덤을 파헤쳤다가 할머니한테 혼만 났어. 다른 주인 가족들은 다 떠나고 할머니만 남았어. 악돌이도 사라지고 흰순이도 죽은 이 마을은 너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어. 할머니가 떠나면 나도 어딘가 팔려 가겠지?

 

그리고 그 마을에서 흰순이 같은 개들이 풀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태어나주기를 바랐다. 저절로 되는 것들은 다들 저절로 돌아올 것이다. 

 

 

그저 개로 태어나서 개로 살았고,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고, 계절이 바뀌듯 사람의 삶도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겠지. 그런데, 이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세상 모든 짐승 중에 이토록 인간에게 순종적인 짐승이 또 있을까. 여의치 않으면 버려지고 맞고 간혹 잡아 먹히기까지 하는데도 왜 그토록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일까. 같은 개과의 짐승이라도 늑대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것도 얄궂은 개의 숙명 탓인가. 온몸을 다해 부지런히 개로서 삶을 산 보리를 바라보면 한 인간으로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과연, 이렇게 최선을 다해 내 삶에 충실해 본 적이 있었는가. 비록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직접 부딪혀 보고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지. 이길 수 있는 것과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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