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지은이 루리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1,500원
가끔 지칠 때가 있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든 내부의 정서적 자극이든. 그럴 때 읽으면 참 위로가 될 것 같은 동화책이다. 진작부터 유명세로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아동문학이라는 편견도 있었을지 모르고 이 책 보다 읽을만한 책이 더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듯 심신이 지쳐 있을 때 이 책이 생각났다. 갑자기 매우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너무 큰 위로를 받았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가엽고 슬프면서도 결국에는 희망을 품게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지쳐있던 삶의 발걸음을 한 발자국 더 내딛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코뿔소 노든은 자신의 안식처인 고아원에 남을지 새로운 바깥세상을 향해 나아가 자신과 같은 코뿔소를 만나야 할지 기로에 선다. 할머니 코끼리에게 결국 자신이 고아원에 남을 것이라고 말하자 할머니 코끼리는 말한다.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는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_p.15
고민하는 노든에게 코끼리들은 말한다.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다고. 이별은 슬프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노든의 성장을 위해 코뿔소의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코뿔소 무리를 만나 아내도 딸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인간들은 코뿔소 뿔을 가지기 위해 노든의 아내와 딸을 죽였고 노든은 동물원에 가게 된다. 매일 밤 분노에 차 인간들에게 복수할 것만을 꿈꾸는 노든에게 잉가부는 말한다.
"기분 좋은 얘기를 하다가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_p.30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진 노든을 위로하는 유일한 존재가 잉가부였다. 같은 코뿔소이면서 탈출의 동지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날 일만을 고대하였으나 잉가부마저 뿔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노든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흰바위 코뿔소가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이 참 죄가 많다.
동물원에 불이 나 생각지도 않게 탈출을 하게 된 노든은 알을 입에 물고 가는 펭귄 치쿠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알이 아니면서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치쿠. 노든은 긴 여정의 동료를 만났지만 과거의 일을 쉬이 떨쳐내지 못한다.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_p.57
잠들지 못하는 밤, 밤의 고요는 침잠되어 있던 감정의 응어리를 터트리게 한다. 슬픔과 분노, 후회와 좌절감, 그리고 삶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 그 모든 것을 어둠 속에서 그러안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불면의 밤들은 물리적 시간을 초월한다. 그냥 긴 밤이 아니라 긴긴밤이다. 긴긴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며 견딜 수 없는 현재를 견뎌내야 만 하는 시간이다. 야속하게도 밤은 또 찾아오고 잠들 수 없어 더욱 길기만 하다.
여행을 함께 하던 치쿠가 죽고 그가 돌보던 알에서 새끼가 태어난다. 알을 돌봐 달라던 치쿠의 말대로 노든은 새끼 펭귄과 바다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한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 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_p.87
자신과 같은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든이 절망하고 있음을 알고 할 말을 잃은 새끼 펭귄. 이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라는 것은 다시 말해 혼자라는 이야기가 된다. 자신은 그 외로움 속에 있으면서도 노든은 과거에 코끼리들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새끼 펭귄을 돌보며 그가 새로 맞이할 세상의 길을 열어준다.
태어나 처음 물속으로 들어간 펭귄은 신이 나 노든과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서로는 너무 다른 존재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_p94
서로 다른 두 동물이 그 다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던 탓에 느끼지 못했지만 둘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다. 자신 곁의 동물들의 죽음을 여러 번 겪으며 혼자 남겨진 노든에게도 태어나 처음 본 동물이 노든이었던 새끼 펭귄에게도 서로가 버팀목이었고 이정표였다. 우리는 서로 달라도 이들처럼 함께 할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가능한 한 도우며 나와 모두 달라 혼자 툭 떨어진 거 같은 외로움이 들더라도 함께 할 수 있다. 때가 되면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기도 하겠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 갈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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